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깨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는 윤극영 선생님이 1924년에 작사·작곡한 동요 '설날'의 첫 구절입니이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고유의 명절인 음력 설날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
- ENCYKOREA
가사에서 '까치 설날'은 양력 1월 1일을, '우리 설날'은 음력 설날을 의미한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음력 설을 없애고 양력 1월 1일을 공식적인 설날로 지정했지만, 윤극영 선생님은 이 노래를 통해 우리의 전통 명절인 음력 설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까치'는 우리나라에서 길조로 여겨지는 새로, 과거에는 반가운 손님이 오면 까치가 운다는 속설이 있었다. 설날에 멀리에서 살고 있는 가족, 친지들이 찾아 오는데 이들을 맞이하는 반가운 마음을 까치를 통하여 표현한 것이다.
- 천지일보
따라서, 이 동요는 우리의 전통 명절인 음력 설날을 기념하고, 일제강점기에도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설 날 - 가사
1절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2절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내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세요
3절
우리집 뒤 풀에는 널을 놓고서 상들이고 잣까고 호도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4절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집 저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우리 어렸을 때에는 설이 정말 좋았다. 위 노랫말 이상으로 좋았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의 설날 모습은 어땠을까?
삼국시대 설날
삼국시대에는 설날이 농경과 자연 순환의 축제였다. 한 해 농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상과 신에게 기도하며 온 가족이 모였다. 설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과 함께 감사함을 느꼈다. 가족들은 대가족 중심으로 함께 거주했기에 명절 분위기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차례를 준비하며 함께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며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표준 차례상에는 간소하지만 제철 음식을 올렸다. 곡식, 육류, 생선, 과일 등이 주요 항목이었다. 귀향은 도보나 가마를 이용했으며, 이동은 대부분 단거리였다. 가족은 대가족 중심으로 모였으며, 부족 공동체의 의미가 강했다. 선물로는 곡식, 술, 의복, 수공예품, 농기구 등이 오갔다.
조선시대 설날
조선시대 사람들은 설날을 유교 예법에 따라 조상을 모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여겼다. 설이 가까워지면 집안 대청소를 하고 제사를 위한 음식을 준비했다. 가족 구성원들은 엄격한 역할 분담 속에서도 설날을 통해 조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중요한 전통을 느꼈다. 어른에게는 경의를,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되는 날이었다. 설날에 모인 가족은 한복을 차려입고 차례를 지내며 조상의 은혜를 되새겼다.
음식은 한식 요리와 다양한 과일, 술, 떡국이 기본이었다. 귀향 수단은 주로 도보였으나 부유한 계층은 말을 이용했다. 가족은 여전히 대가족 중심이었고, 고향에서 대규모로 모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선물은 한지, 약재, 비단, 도자기, 음식이었다. 풍습은 유교 예법에 따라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1930년대 설날
일제강점기 설날은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났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가족 간 유대를 강화하고, 일제의 문화 동화 정책에 저항하는 상징적 행위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설날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었으며, 가족은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다. 도시로 이동한 가족들도 설날만큼은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차례상은 경제 상황에 따라 간소화되었으며, 떡국, 전, 나물 등이 기본이었다. 귀향은 기차가 주요 수단으로 등장했고, 상류층은 자동차를 사용하기도 했다. 가족은 핵가족화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대가족 중심이었고, 선물은 일본 상품과 전통 물품이 혼재되었다. 곡식, 명주, 설탕, 양말, 약품이 대표적이었다.
1960년대 설날
1960년대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설날만큼은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만나던 시기였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귀향객으로 붐비는 역과 버스 터미널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설날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새로운 해를 맞아 각자의 안녕을 기원했다. 도시와 농촌이 연결되며 다양한 음식과 문화가 교류되기도 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설 풍속에도 변화가 생겼다. 육류와 가공식품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귀향은 철도와 버스가 주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가족은 도시와 농촌을 잇는 방문이 많았고, 점차 핵가족화가 심화되었다. 선물은 설탕, 과자, 비누, 양복지, 전축 같은 생활용품이 주를 이뤘다.
1990년대 설날
1990년대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며 설날 풍속이 점점 변화했다. 차례는 여전히 지내지만, 가족끼리의 모임이 축제처럼 느껴졌다. 많은 사람이 설날을 기다리며 설렘과 기대를 품었다. 고향으로 가는 귀성길은 교통 체증 속에서도 웃음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가족 구성원 간의 교류가 활발했으며, 가족 사진 촬영이나 나들이 같은 여유로운 활동도 점차 늘어났다.
차례상은 한과, 육류, 가공식품 등으로 풍성해졌으며, 상차림도 지역에 따라 개성이 강해졌다. 귀향은 자가용이 대중화되며 교통 체증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가족은 핵가족 중심의 소규모 모임이 늘었고, 선물은 상품권, 과일 세트, 화장품, 가전제품, 건강식품 등이 주를 이루었다. 명절 소비가 활성화되며 상업적 성격이 강해졌다.
2025년 설날
오늘날 설날은 전통과 현대가 혼재된 모습이다. 차례를 준비하는 가족도 있지만, 간소화하거나 생략하고 가족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많아졌다. 특히 긴 명절휴가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증가되었다. 가족들은 설을 통해 만나기보다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설날의 의미가 희석되었다는 우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방식으로 명절을 기념한다. 설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과거보다 더 다양하며, 각자가 선택한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오늘날 설날 차례상은 지역별 특성과 간소화된 형태가 공존한다. 떡국, 전, 고기류, 과일, 한과가 주요 항목이다. 귀향은 KTX, 자가용, 항공기까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한다. 가족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비대면 모임도 늘었으며, 물리적 모임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선물은 건강식품, 스마트 디바이스, 와인, 명절 선물세트, 기프티콘 등이 인기를 끈다.
'라이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퇴 준비 - 재정, 심리, 건강, 사회 활동 등 상세 계획 (0) | 2025.01.28 |
---|---|
설 연휴 기간 서비스 운영 현황 (0) | 2025.01.26 |
세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큰 절 (0) | 2025.01.25 |
맛도 좋고 향도 좋은 몸에도 좋은 천혜향 (0) | 2025.01.23 |
말하는 새 - 앵무새 (0) | 2025.01.22 |